도바 후시미 전투 유적
이곳 조난구 신사에서 메이지 유신을 결정짓는 보신전쟁의 발단이 된 도바 후시미 전투가 시작되었다.
1868년 1월 3일 왕정복고의 대호령으로 에도 막부가 폐지되고, 전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6일 교토의 니조성에서 오사카성으로 물러났다. 하지만 사쓰마번의 소행에 대해 막부 신하들이 분격하여 26일 구 막부병과 아이즈·구와나 두 번 등의 병사로 이루어진 대군이 오사카에서 교토로 향했다.
이에 대해 조정은 다음 날 27일 후시미 시내와 고코노미야 신사에 사쓰마, 조슈, 도사 등 여러 번의 병사들을 추가로 배치했다. 도바에서는 조난구 신사에서 도바 가도의 고에다 다리에 이르는 니시산도 길과 가모강의 죽림, 동쪽의 아부라노코지 길에 걸쳐 사쓰마군이 포진했다. 이윽고 교토를 향해 도바 가도를 북상하고 있었던 구 막부군이 조난구 신사에서 남남서 500미터 거리에 있는 아카이케에 이르러 교토 진입을 저지하는 사쓰마군과 장시간 대치했다. 일몰 시간이 다가오면서 구 막부군이 강행 돌파 태세를 보이자 나팔소리를 신호로 조난구 신사 니시산도 길에 있었던 사쓰마군의 대포가 울리면서 총격이 시작되었다. 이어서 후시미에서도 양군이 충돌해 격전이 벌어졌다.
28일에도 시모토바에서 후시미에 걸쳐 전투가 계속되었는데, 닌나지노미야 요시아키라 친왕이 니시키노미하타(관군 깃발)를 받들고 고쇼(천황의 거처)에서 출진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관군이 된 신정부군의 사기가 크게 높아졌다.
29일 관군 깃발은 도바 가도를 따라 남쪽으로 전진했다. 구 막부군은 요도, 야와타로 퇴각했고, 신정부군이 전투에서 승리했다. 그리고 4월 13일 메이지 천황은 조난구 신사 배전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뒤 직접 군을 이끌고 오사카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