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타마쓰시마 신사
이 신사는 1186년 고토바 천황의 칙명으로 후지와라노 도시나리가 고조 대로(현재의 마쓰바라 거리) 가라스마에서 무로마치에 걸쳐 있었던 자신의 저택지에 와카야마현 와카노우라의 다마쓰시마 신사에 모셔져 있는 와카(일본 고유 형식의 시)의 신 ‘소토오시노이라쓰메’의 분령을 청하여 맞이한 데서 유래한다. 그는 후지와라노 사다이에의 아버지이자 헤이안 말기부터 가마쿠라 초기의 와카 시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보다 더 오래된 1183년에 고시라카와 천황의 하명에 따라 후지와라노 도시나리는 이 저택을 와카도코로(와카 선집 편찬을 위해 설치하는 임시 관청)로 삼아 “센자이 와카슈”를 편찬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 해에 기소 요시나카가 교토에 쳐들어와 헤이케 일족이 낙향하게 되었다. 그 때 문하의 한 사람인 다이라노 다다노리는 위험을 무릅쓰고 이 저택으로 되돌아와 ‘한 수라도 선정해 주길 바란다’며 자신의 와카 선집을 바친 일화가 유명하다. 도시나리는 그중에서 다음 한 수를 골라 “센자이 와카슈”에 실었다고 한다.
시가 지방의 수도는 황폐해졌지만,
나가라야마 산 벚꽃만은 옛날 그대로 아름답게 피어 있구나
에도시대에는 “겐지모노가타리 고게쓰쇼” 등을 저술한 고전 주석의 제일인자이자 마쓰오 바쇼의 스승이었던 기타무라 기긴이 약 7년 동안 이 신사에서 신관으로 거주하면서, “만요슈”의 주석서 “만요 슈스이쇼” 편찬에 힘썼다.
이러한 역사로 인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단가나 하이쿠와 같은 시 또는 글을 더 잘 쓸 수 있도록 기원하기 위해 이 신사를 찾고 있다.
교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