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시모토 사나이 임시 거처 터

후쿠이번 사무라이 하시모토 사나이는 에도막부 말기의 지사였다. 1858년 2월부터 4월까지 이곳에 있었던 후쿠이 영주 저택에 거주하면서 활약했다.
게이가쿠라는 호를 지닌 사나이는 후쿠이 성하도시에서 태어나 오사카와 에도(지금의 도쿄)에서 양학과 의학을 배웠고, 영주 마쓰다이라 요시나가의 인정을 받아 번립학교 메이도칸의 책임자가 되었다.
1857년의 번정개혁 때는 유리 기미마사 등과 함께 수완을 발휘했다. 때마침 막부의 쇼군 후계자 문제가 발생하자, 후쿠이번 영주가 선두에 서서 히토쓰바시 요시노부를 지지하는 운동이 전개되었다. 번의 명령에 따라 에도를 떠나 교토에 도착한 사나이는 모모이 료타로 또는 모모이 이오리라는 가명을 사용하면서 이곳을 근거지로 삼아 크게 활약했다. 그러나 이이 나오스케가 다이로(쇼군을 보좌하는 최고직)에 취임하면서 이 운동은 실패로 끝났고, 사나이는 감옥에 갇혔다. 1859년 안세이 대숙청에 의해 처형되었다. 그 때 그의 나이는 26세였다.
교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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